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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다 그림 그리기(자폐아의 반복행동)

Posted by 약간의여유
2014. 8. 29. 14:41 자폐아들과함께

과연 아들에게 종이에 그림 그리는 것을 무한정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무한정" 허용할 수 없다. 내 아들은 종이에 연필이나 크레파스로 긁적이는 것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감각적인 통합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반복적인 동작을 통해서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리라. 그러한 기쁨을 빼았는 것이 바람직한다. 당장 그림을 못 그리게 하면(사실 아들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종이에 긁적이는 행동을 하는 것 뿐이지만), 아들은 울고불고 난리법석을 피운다. 그러한 행동의 패턴은 자신의 쾌락을 유지하려는 욕구를 표현하는 것이다. 언어가 딸리기 때문에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폐증 때문에 자기 자신을 말과 몸짓으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들에게 제대로 된 말을 하도록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들의 광적인 울부짖음에 져서 계속해서 종이 긁적이기를 묵인한다면, 아들은 커서도 하루종일 생산성 없는 종이긁적이기에 몰입하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과연 나의 예상이 타당한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당장 종이긁기는 하면 아들은 겉보기에는 마음의 평온을 얻은 것처럼 몰입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곧잘 어떤 좋지 않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들은 다시 야단법석을 피운다. 아무래도 종이 긁기의 쾌락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자신의 감각적 자극에 크게 실망했기 때문이리라. 

가끔 아내와 이 문제 때문에 다툰다. 나는 종이 긁기를 내가 보는 앞에서는 절대로 허용하지 않을 것처럼 행동한다. 이것이 나의 교육방침이다. 하지만 아내는 종이 긁기를 허용하면서 글씨 연습이라든가 미술 교육과 같은 점차 고차원적인 행동패턴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아들의 필기구에 대한 집착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폐증 아이의 문제점이 대부분의 경우에는 아무런 욕구도 없는 것인데, 아들은 필기구에 대한 집착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내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별다른 확실한 이론이 있어서 내 나름의 아들 교육지침을 마련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아내에게 불만을 갖는 것은 이론상으로는 무작적 긁적거리는 행동패턴에서 좀더 고차원적인 행동패턴으로 이행시키는 것이 가능하지만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할 것이지가 불명확하고 내가 보는 한도에서는 아내는 아들이 제 멋대로 하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들에게 한글 읽기를 시키는 것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나의 신념은 이렇다. 

 "아들은 지금 한글 읽기를 싫어한다. 그것은 한글 읽기에서 어떠한 흥미나 쾌락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아들은 가끔 한글 읽기에서 조금씩 의미를 찾아가고 즐거워할 때도 있다. 한글 읽기를 싫어하는 것은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잘 읽을 수 없고, 읽더라도 그 의미를 잘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형식적인 의미를 파악하더라도 언어가 이루어지는 사회적 맥락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글을 읽고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면 지 스스로 책을 읽게 될 것이다."

그렇다. 능력이 되지 않은 행위에 대해서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일단 능력을 갖추어 놓고 말해야 한다. 우선 나는 아들을 통해서 일종의 실험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과연 아들이 읽기 능력이 된다면 그토록 싫어하던 읽기를 자기 스스로 하게 될까?  아니 아들은 읽기를 싫어한다기보다 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 것, 또는 책에도 두 눈을 집중해야 하는 활동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 뿐이다. 몸은 큰 긴장감을 느끼는데, 책읽기을 통해서는 긴장감을 해소할 수 있는 무의식적인 "만지작거리기"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긴장을 해소할 수 있는 활동을 못하게 되니까 싫은 것이다. 하지만 긴장감을 해소하는 활동에서 쾌감을 갖는다고 해서 본원적인 긴장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증폭된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한 긴장을 해소하는 것은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오히려 유용할 수 있다. 책읽기는 긴장감과 대항하는 힘을 기르는 활동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