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을 사실과 가치로 분류할 수 있을까?
법학은 사실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가치에 관한 학문입니다.
사실에 관한 학문은 자연과학이고, 가치에 관한 학문은 주로 윤리학입니다. 법학은 윤리학의 한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국가에 의해서 강제되는 행위의 타당성에 관한 학문입니다.
경험은 존재와 당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존재란 현재 실제로 발생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당위란 앞으로 마땅히 발생되어야 할 사실입니다.
요즘에는 "당위"에 관한 논리를 매우 재미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이냐 하는 것은 고리타분한 주장이라는 것이지요. 인간은 현재에 살면서 미래를 지향하는 존재입니다. 현재와 똑같은 삶이 미래에서 그대로 계속된다면 별로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재미있게 하는 것은 "당위"입니다. 미래에는 지금과 다른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현실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고 있는 것을 미래에는 개선할 수 있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습니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모든 재앙이 빠져 나왔지만, 희망은 남았습니다. 인간은 재앙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면 굳건히 버틸 수 있습니다. 인간이 미래를 꿈꾸는 존재가 아니라면, 사실과 가치의 구분은 무의미합니다.
그런데 사실과 가치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우리의 가치판단에 의해서 오염된 사실입니다. 우리는 주관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사물을 봅니다. 우리의 눈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모든 감각기관이 다 그렇습니다. 결국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힘은 "믿음" 때문입니다.
2014/10/02 - [이런저런] - 에셔의 작품세계와 매트릭스 너머의 진실 바라보기
이렇게 본다면 우리의 경험을 사실과 가치로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가치의 세계로 돌변합니다. 자연과학도 우리가 지금껏 쌓아놓은 실험과 행위라고 하는 사회적 가치 위에 구축되어 있습니다. 실험과 행위는 그것이 갖는 유용성이라는 것에 근거를 둡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데 얼마나 유익하냐에 따라 과학적 행위도 이루어집니다. 과학이 추구하는 "앎"이라는 것도 나의 지적인 쾌락을 위한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삶에 유익한 결과를 도출해 내기 위한 수단입니다.
우리가 과학을 추구하면서 오캄의 면도날에 따라 더욱 간단한 이론을 개발하려고 하는 것도 간단함에 주는 유용함에 있습니다. 간단한 것은 이해하기 쉽고, 외우기 쉽고, 써먹기 쉽습니다.
결국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구별은 구별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한 만용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경험이란 모두 가치의 세계에서 나왔다는 것은 우리 지식의 한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모두 나의 주관에서 온 것이니 그것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주장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자신의 상대성에서 온 한계를 알고 겸손해지자는 것이지요. 학문의 미덕은 알수록 더욱 머리를 숙이게 하는 겸손성에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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