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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과 두리뭉수리의 미학, 원만한 시장이론을 기다리며

Posted by 약간의여유
2014. 9. 23. 09:19 돈벌고쓰고/국가경제정책

저는 "대충"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언젠가 제가 대충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다가 친구한테 된통 혼난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의 일입니다. 친구는 뭐를 대충하라는 말을 들으면 무척 화가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감짝 놀랐습니다. 여태껏 "대충"이 좋은 뜻인 줄 알았는데, 나쁜 뜻이라는 겁니다. 


저는 대충을 "적당히"로 이해했었습니다. 사실 저는 어쩌면 강박관념이 있었는데, 대충이라는 말은 저한테 심리적 안정과 위로를 주는 것은 물론 세상의 구조가 마음에 안 들어 울분에 휩싸일 때마다 다시금 마음 추스리고 웃음 짓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경제학의 세계는 엄밀의 세계라기보다는 "대충"의 세계가 아닐까 합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수학과 통계학을 공부하기 때문에 경제학이 엄밀한 과학의 세계가 아니라 대충대충의 세계라면 크게 화를 낼 것입니다. 제 글을 경제학자들이 읽지 않을 것이니까 그나마 다행이로군요. 


경제학의 수요곡선은 수많은 개인의 다양한 기호와 욕망을 대충 때려잡아 그린 것입니다. 경제학에서 다루는 인간의 물질에 대한 욕망은 사람마다 무척 다양합니다. 경제적 현상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도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이라는 단서를 대충 내세웁니다. 그런 단서를 통해 논의의 폭을 줄여 과학적 엄밀성을 높이겠다는 것인데, 저한테는 기껏 사람을 홀리는 두리뭉수리로만 보입니다. 왜냐 하면 경제학은 개별적인 인간의사와 욕망을 다룬다기보다는 수요자라는 거대한 인간집단을 통째로 다루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엄밀한 욕구는 서로 상쇄되어 가상적으로 존재하는 거대한 집단의 욕구로 승화됩니다. 


개별 원자를 다루는 양자역학의 세계는 "불확실"과 "확률"의 세계이지만,  수 억, 수 조, 수 경 개의 원자를 다루는 중력의 세계는 확실성의 세계입니다. 미시 세계의 개별적인 불확실성은 서로 상쇄되어 거시의 세계에서는 확실성으로 변모합니다. 아니 대충 확실하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대충의 세계는 "민주주의"의 세계이기도 합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 의사결정을 할 때 대립되는 의견을 대충 타협하지 않으면 어떤 결정도 성립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국가가 존속하는 것도 사람들끼리 대충 타협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경제학에서 "시장"은 매우 민주적인 세계입니다. 개별적인 사람들이 가격이라는 "보이는 수치"를 통해서 아주 복잡한 결정의 문제를 해결하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완전히는 아니지만 대충 만족한 채 시장에 참여합니다. 한 사람이 철저히 만족하는 독점은 시장의 적이요, 민주주의 적입니다. 누구도 만족하지만 완전히 만족하지는 못한 채 대충 살아가는 세계가 시장이기도 합니다. 누가 아나요. 그 이면에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