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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이민자에 대한 문화적 차별 없애야

Posted by 약간의여유
2014. 9. 11. 14:08 느끼며즐기며

한민족은 단일민족이라는 의식이 강하다. 하지만 한국인은 단일한 혈연을 갖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를 사용하고 단일한 문화를 가꾸어 왔을 뿐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인은 동아시아인에 속하지만 남방계와 북방계가 섞여 있다. 사실 동아시아 삼국의 어느 사람의 외모만을 보고서는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를 금방 알기는 어렵다. 우리는 각 인물이 풍기는 독특한 문화적 모습을 보고서야 알 수 있고, 가장 확실하게는 말하는 언어로서 구분할 수 있다.


한국인의 정체성은 혈연이 아니라 결국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문화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가?


한국에 다문화를 적극 권장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논쟁이 많다. 먼저 한국의 고유한 문화라는 것도 규정하기에 따라서는 한국만의 특유한 것이라고 하기 어렵다. 한국의 문화도 역사적 경과에 따라 다양한 유입경로에 따라 전파된 것이 태반이고, 한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완전한 창조는 아니고 외래에서 유입된 문화가 한국적 풍토에서 변형된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문화든지 단일한 원리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요소가 서로 어울려서 만들어지고, 문화적 상대성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어떤 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더 우수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다만 문화란 인간의 행복을 위해 공헌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고, 인간의 행복에 가장 많이 공헌하는 문화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문화라는 것만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존엄한 존재이므로, 문화는 기본적인 인간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다문화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는 최근 프랑스에서 벌어진 이스람권 주민의 소요사태 등을 들어 다문화 정책이 우리 사회의 문화적 동질성을 훼손하여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것이라면서 반대하는 목소리도 널리 존재한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종교적인 소요사태가 발생한 프랑스의 경우에도 인간을 더욱 존중할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인 것만은 사실이고, 프랑스는 문화적 동질성을 확보하기 위한 일련의 작업에 들어갔으며, 그 결과는 서로에 대한 관용의 증대일 것이다. 문화적 다양성은 상대에 대한 관용의 증대에 기여할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이웃에 외국인이 사는 것을 싫어한다는 비율이 30%를 넘고 있는 반면, 미국인의 경우에는 그 비율이 5%에 불과하다. 한국인인 다른 문화에 대한 관용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문화는 우리의 관용성을 증대시킬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유연한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에 접해보고 그 장단점을 깨달아야 한다. 문화적 국수주의가 동질성을 높일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 자체적인 문화의 발전을 가로막을 뿐이다. 지금은 개방화의 시대이다.


인간은 기본적인 인권을 가지고 있다. 그 국적을 초월하여 인간의 인격은 존중되어야 한다. 최근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면, 일부 외국인 노동자의 범죄를 과장해서 전하거나 외국인에 대한 혐오감을 조성하는 포스트를 종종 발견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의 영역을 침범 당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러한 본능은 외부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혐오감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그러한 혐오감은 무수한 분쟁을 일으킨다.


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약자와 외부인을 보호하려는 욕구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제3자로서 싸움을 지켜 볼 때 약자가 당하는 것에 대해 측은한 마음을 품게 된다. 외국인 노동자는 약한 나그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우리의 문화수준을 보여주는 가늠자가 아닐까?


다른 한편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1990년대 이후 미국과 일본의 경제성장에 큰 차이를 보이게 한 것은 바로 이민자에 대한 정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적극적으로 이민자를 받아들인 덕분에 경제가 축소되지 않고 성장한 반면, 일본은 이민자에 대해 폐쇄적인 입장을 취했고, 결과적으로 경제는 쇠락했다. 일각에서는 집값을 올리기 위해 몇 억 이상의 주택을 구매하는 자에게는 영주권 등을 부여하는 방안이 시행되고 있기도 하다. 이것은 단편적일 뿐이고, 적극적으로 외국인이 한국땅에서 일하고 나서 정착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복지제도를 갖추고, 문화적으로도 관용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외국인 노동자가 주로 하층민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며 반대하는 주장도 있으나, 단기적으로는 외국인이 일자리를 빼앗는 것처럼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사양산업이 국내에 존속하게 해주고 외국인이 정착할 경우에는 오히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게 된다. 미국의 연구에서는 이민자가 가장 생산성이 높은 노동계층이라는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들도 국가는 이민자를 적극 수용하려는 정책을 펼치라고 주장했다. 아무리 세월이 바뀌었더라도 인구는 바로 국력이다. 단지 국가주의적인 관점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천부의 인권을 타고 났으며, 그가 어디에 거주하든지 인간다운 대접을 받을 권리를 갖고 있다. 이러한 인간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모든 국가의 의무이다.


어느 누구도 자기가 태어날 국가를 정할 수 없다. 따라서 개념적으로 가장 공평한 것은 누구든 어떤 나라에 태어나는지와 상관없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동일한 기회를 제공받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불가능하다고 해서 이러한 정의의 이념을 무시할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실천 가능한 부분부터라도 인권을 존종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고, 이러한 사상을 국가의 정책에 반영하려는 노력 또한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