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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에 대한 감정의 특성

Posted by 약간의여유
2014. 8. 29. 14:40 느끼며즐기며

이성에 대한 감정은 언제나 일시적인 것일까? 아니면 지속할 수 있는 것인가? 단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오히려 일시적이냐 지속적이냐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격정적인 것이냐 아니면 잔잔한 물결처럼 은은한 것이냐를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성에 대한 감정을 느껴본 사람은 안다. 이성에 대한 사랑은 그 어떤 것보다도 격렬한 것이 있다고.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고.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고. 

흔히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이성에 대한 감정이 종족보존을 위한 것에 불과하다면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한 것으로 여긴다는 것은 어패가 있는 듯도 보인다. 종족보존이 자기보존보다 앞설 수 있는가? 하지만 동물의 사례를 살펴보면 자기 생명보다 종족의 보존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듯한 행동양태를 보이는 종들이 많이 있다. 사마귀는 교미 후에 숫컷이 암컷에게 잡아먹힌다. 가시고기는 죽어서 자식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한다. 이러한 사례에서 볼 때 종족보존이라는 명제는 이성에 대한 사랑과 자식에 대한 사랑이 생기게 된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우리는 흔히 이성에 대한 사랑은 이기적이고, 자식에 대한 사랑은 숭고한 것으로 치부하기 쉽다. 하지만 그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보면 자식사랑과 이성사랑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다. 

이성에 대한 사랑도 다분히 이타적인 요소가 존재한다. 자식을 낳기 위해서 여성과 남성의 기여도가 다르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에게는 서로 다른 성행동의 패턴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단순히 본능이라고 하거나 이기적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이타적인 요소가 분명히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감정은 왜 생기는가? 대체적으로 감정은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 생긴다. 싫어하는 감정은 그것을 하지 못하게 하고, 좋아하는 감정은 그것을 지속하게 하려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다. 이것은 맛있는 음식을 계속 먹게 함으로써 사람의 생존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이성을 만나면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는 것도 이성과의 교제를 지속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성에 대해 아무런 감정도 생기지 않는다면 우리 인류는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감정은 지속적인 자극에 대한 반응에 불과한가? 아이들을 관찰하면 쾌락을 느끼게 하는 자극에 대해서는 좋은 감정을 갖게 하여 그것을 추구하게 하는 행동양식을 이끌어낸다.


이러한 자극-반응에 대한 생각을 이성에 대한 감정으로 확장적용한다면, 이성과의 교제가 쾌락을 일으킨다는 것이고, 이는 종족보존을 위한 것으로 우리의 본능에 깊이 내재하는 것이므로 인간은 단순히 자극에 반응하는 기계와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종족보존이 절실하다면 아주 강력한 감정이 주어지고 다른 무엇보다 추구하게 만들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에 종족보전과 상관이 없는 쾌락의 추구는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종족보존이란 이성에 대한 감정의 궁극적인 목표일 분이지 우리가 매번 느끼는 감정의 배후에서 언제나 인식되는 것은 아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공부를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매를 들지만, 아이는 단지 매맞는 것이 무서워 부모의 말을 듣는다. 부모가 뜻하는 바 궁극적인 목적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사람의 감정은 이와 같이 1차원적인 것이다. 지성은 원인과 결과의 연결고리에 따라 우리가 취하는 행동의 고차원적인 목적을 인식하게 해 주지만, 감정은 맹목적이다. 감정은 맹목적이기 때문에 순간적인 쾌락을 추구하기 위한 것을 벗어나기 어렵다. 


이성에 대한 감정도 이와 같은 순간적인 쾌락을 추구하려는 충동의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감정이 지속될 때에는 점차 그 근원적인 목적을 인식하게 된다. 즉 종족보존을 통해서 죽음을 초월하고자 하는 욕구를 인식하게 된다.


이성에 대한 감정을 느낄 당시에는 모르지만, 이성에 대한 감정은 결국 자녀에 대한 사랑을 낳는다. 자녀에 대한 사랑은 더 나아가서 인류의 아버지인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까지 이어진다. 

종족보존은 내가 죽어 없어진다 사실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한다. 나는 없어지지만 내 후손을 내 뒤를 이어 계속해서 생존해 갈 것이다. 이것으로 내 희생의 위안을 삼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