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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와 자유주의

Posted by 약간의여유
2014. 8. 29. 14:41 어떻게살까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의 문제점을 보완한 자유주의다. 우리는 무슨 "주의"라는 것을 극단적인 주장으로 생각한다. 당초 자유주의는 자유를 절대적인 가치로 생각했고,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자유시장경제를 철칙으로 삼았다. 그러던 것이 신자유주의에서는 자유시장경제의 핵심 원리인 경쟁이나 시장의 가치를 복원하기 위하여 경제에 대해 어느 정도의 정부 개입을 허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유주의는 자유와 평등의 관계를 서로 대립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모든 시민에게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서는 일부 소수의 자유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 평등이 전제되지 않으면 일부가 자유를 남용하여 타인의 자유를 제약하기 때문이다. 자유는 일정한 능력을 전제로 하는데, 일부가 자신의 능력을 남용하면 타인에게 그 자유를 실현할 능력을 박탈하는 것이 된다. 진정한 자유주의는 사회전체적인 "자유의 총량"을 극대화하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고전적 의미의 자유주의는 자유를 극단적으로 주장함으로써 오히려 자유를 막는 우를 범하고 있다. 

자유주의는 그 "주의"라는 이념성으로 인해 자유의 이념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는 자유주의가 아니라 소박한 자유론을 주장할 차례이다. 결국 새로운 자유론도 일관된 주장을 하자면 "이념성"을 갖지 않을 수 없고, 다시금 "자유주의"로서 불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자유주의에서는 평등을 통해 자유를 실현하는 것은 가능하다. 혹은 평등이 궁극적으로 자유에 지장을 초래한다면 형식적인 평등을 버릴 수 있는 것이 새로운 자유주의에 부합한다. 자유는 인간의 창의성과 존엄성을 나타낸다. 자유를 극대화하는 것이 인간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자유주의는 그 자체로서 목적을 갖는 것이 아니다. 자유주의는 인간의 행동지침이다. 최대 다수에게 최대 행복을 제공하는 결과론적 윤리학설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칸드의 주장과 같이 인간에게 양심과 이성에 따른 절대적인 행동지침을 제공하는 의무론적인 윤리설은 그 자체가 일정한 한계를 갖고 있다. 인간의 양심과 이성은 인간행동의 결과에 따른 판단을 배제할 수 없다. 최대 행복을 이끄는 것이 아닌 행동경로를 선택하게 하는 것은 양심에도 어긋난다. 의무론적인 윤리설은 연역적인 절대적인 명제에서 출발하지만, 그러한 절대적인 명제는 행위가 사회에 미치는 결과에 대한 합리적인 계산을 전제로 한다. 즉 과학에서 이론을 만들기 위해서는 귀납적인 추론이 필요하고, 그러한 이론을 현실에 맞추어 검증하기 위해서는 연역적인 추론이 필요하다. 귀납과 연역이 함께 어울어져 과학이론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듯이, 인간행위의 논리도 과학이론과 같다. 행위의 결과에 비추어 어떻게 행동할 것이냐 하는 행동강령을 정해야 하고, 이러한 행동강령은 개인의 내면적인 나침반의 역할을 하면 구체적인 사례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는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자유주의는 결국 인간을 최대 행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인간에게 최대의 자유를 주는 것이 타당하다는 방법론적인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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