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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언) Cognitio legis est copulata et complicata

Posted by 약간의여유
2015. 12. 9. 11:23 어떻게살까/법과 생활

" Cognitio legis est copulata et complicata." 

법의 인식에는 얽힘과 복잡함이 있다. 


이 법언은 법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어언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깊이 느끼게 됩니다. 법은 너무나 방대합니다. 우리나라의 법령만 하더라도 4천개가 훨씬 넘습니다. 그리고 법령은 매일 만들어지고 공포되고 있습니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법도 복잡해집니다. 


법을 처음 공부할 때 "법원"이라는 것을 배웁니다. 법의 근원이라는 뜻입니다. 법이라는 것이 어디에서 흘러나온 것인가 하는 것을 다루는데, 주로 법을 어떻게 발견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와 같은 성문법 국가에서는 법은 국가가 제정하는 헌법, 법률, 대통령령, 부령과 같은 문서의 형식으로 알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문법뿐만 아니라 관습법이나 조리와 같은 법원도 인정되고 있습니다. 


영미권 국가에서는 불문법이 오히려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물론 성문법의 힘이 점점 증대하고 있지만, 기본법 분야에서는 아직도 법원이 만들어내는 판례법이 막강합니다. 영미권에서는 법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알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그래서 일본이 처음으로 서구의 법률제도를 도입하려고 할 때 성문법 국가들, 즉 대륙법계 국가인 프랑스와 독일을 모방하려고 했는데, 마침 독일이 보불 전쟁에서 프랑스를 이기자 일본은 전격적으로 독일법의 도입을 결정합니다. 일본이 독일법의 영향권에 들어오자, 일본의 식민지를 경험한 우리도 선택의 여지 없이 독일법의 지배를 받게 되었지요. 


독일법은 매우 체계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독일이 철학이 발달한 만큼 법학에서도 논리성을 강조합니다. 물론 구체적인 사실에 대한 타당성도 중요합니다만, 인간의 사회를 이성에 의해서 규제하려는 이성주의가 법학의 기저에 있습니다.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인 것이고, 이성적인 것이 바로 현실적인 것이라는 헤겔의 논리가 법학에도 도입됩니다. 


최근 법의 인식과 관련해서 헌법재판소는 수도를 충청도로 이전하려고 하는 법률을 위헌으로 결정하면서 이른바 "관습헌법"이라는 개념은 이유로 삼았습니다. 경국대전을 인용하면서 서울을 수도로 하는 것이 한국민이 관습적으로 인정하고 있고, 이를 관습헌법의 지위에 있는 것으로 격상시키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왕이 거주하는 곳을 수도로 하고 있고, 공화국에서는 의회나 행정부가 위치하는 곳을 말하기도 합니다. 수도는 유기체의 "머리"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과연 성문헌법 국가에서 관습헌법을 인정할 것이냐도 문제가 될 것이고, 수도의 지형적인 위치가 헌법적인 가치를 갖는 것이냐도 그렇고, 과연 국민이 관습적으로 서울을 수도로 인정하고 이에 가치를 부여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지도 의문일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이 결정은 두고두고 많은 논의를 일으킬 것입니다. 


또한 법의 인식과 관련해서 행정부가 내부적으로 마련하는 각종 지침, 내규, 고시 등과 같은 것도 법에 해당하는지도 논란이 되어 왔습니다. 일반적으로 법령의 위임에 따라 작성되는 고시와 같은 것은 법규로서의 효력을 갖지만, 법령의 위임이 없는 것은 법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법규"란 국민을 구속할 효력을 갖는 규범을 말합니다. 행정부의 지침이나 내규 등은 행정부 내부에서만 효력을 갖을 뿐이라는 것이지요. 다만 행정부가 지속적으로 그러한 지침에 따라 행정작용을 하게 되면 국민은 의례 그러한 지침에 따른 처분을 기대하기 마련이므로, "평등"의 원칙상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행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고 마음대로 내부지침을 변경해서 처분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주장되고 있습니다. 물론 내부지침이 법령에 위반된다면 무효이겠지만요. 내부지침이 법령에 위반되지 않고 국민에게 지속적인 효력을 갖는 것으로 인식되는 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쯤 되면 과연 법을 인식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뻐저리게 알게 됩니다. 대한민국에서 통용되고 있는 법률 1천여개를 알기도 벅찬데, 그 많고 많은 시행령과 시행규칙, 거기다가 행정부 내부의 각종 훈령, 예규, 지침들까지. 그것만이 아닙니다. 지방자치 시대에서는 지방자치단체도 조례와 규칙을 제정합니다. 


최근 들어서는 각종 자율적인 기관이 독자적인 지침을 제정하고, 국가가 특정한 전문분야에 대해서는 그러한 지침의 규범성을 인정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과학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전문영역이 늘어남에 따라 도저히 정부의 전문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속속 제기되고 있습니다. 전문가 집단의 영향력이 증대되어 일반시민이 통치하는 시대에서 전문기술자가 통치하는 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관점을 달리보자면, 사법의 영역에서는 사적자치의 원칙에 따라 개개인이 서로 간에 작성하는 "계약"이나, 법인이나 단체의 "약관"과 같은 것도 효력을 갖고, 법은 그 실행을 위해 원조합니다. 


지금까지는 국내의 문제를 다루었지만,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이제는 "국제법"이라는 것이 그 권력을 증대시키고 있습니다. 유엔과 갈은 국제기구가 있고, 각국은 조약을 체결하며, 국제적인 관습법도 존재합니다. 


이렇게 많은 법을 누가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자부할 수 있겠습니까? 법률의 세계는 결국 "겸손"을 요구합니다. 자신의 아집을 버리고 과연 내가 알고 있는 법이 진실된 것이며, 그 한계가 무엇이며, 모르고 있는 법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를 항상 살피지 않으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