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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도시 출퇴근 KTX 대란: 세종시도 걱정, 그래도 균형발전은 계속해야

Posted by 약간의여유
2014. 11. 23. 19:01 이런저런

지방에서는 혁신도시가 건설되고, 곧 각종 공기업이 혁신도시에 입주하고 있습니다. 지방으로서는 공기업의 입주가 축하할 일입니다. 공기업의 입주로 지방경제가 크게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공기업의 직원은 어떨까요?

저는 금년 말로 세종시로 이사가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제 신분이 발각된 것 같네요.

저는 세종시에 온가족이 함께 이사를 가기 때문에 큰 걱정이 없습니다. 하지만 가족을 서울에 놔두고 혼자 내려가는 사람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 것 같습니다.

직원 80%는 서울에 집…혁신도시發 KTX 대란

정부의 공공기관 이전계획에 따라 151개 기관 임직원 5만여명은 2016년까지 10개 지방혁신도시로 내려가게 된다. 지난해부터 지난달 말까지 68개 공공기관이 이전을 완료했다. 이전율은 45%다. 애초 정부는 공공기관을 이전하면 기혼 직원의 절반가량은 가족과 함께 이주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교육·생활환경이 열악하고 문화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은 탓에 기혼 직원들의 가족 동반 이주율은 20%가 채 안 됐다. 현재까지 이주한 2만여명 중 1만5000명 이상이 주말에 상경함에 따라 KTX 좌석 점유율이 100%를 크게 웃도는 상황이다.

위 뉴스를 접하면서 바로 드는 생각은, 인간은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혼자 내려가는 동료들이 안스럽다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네요.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을까요? 애시당초 현신도시나 세종시를 만드는 정책 자체가 잘못 되었을까요?

서울로 집중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지요. 저는 근본적으로 혁신도시나 세종시를 건설하는 정책의 원론에 대해서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위 기사에서도 지적했듯이 세종시와 혁신도시는 "교육, 생활환경이 열악하고 문화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기관이나 국가기관의 직원이 온가족과 함께 이주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왜 필요한 인프라를 갖추지 못했는지를 따지고 보면 지방과 서울의 격차가 나도 너무나 난다는 것입니다.


서울 외에는 모두 시골


저는 최근에 부산에 일이 있어서 갔다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전은 물론 최근까지도 부산 사람들 자체가 부산을 "촌"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제2의 도시가 "촌"이라는 것은 상당히 황당한 것일텐데, 본인들도 서울은 도시다운 도시이고 부산은 시골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 있었습니다. 이것은 부산 사람만의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이 그래요.

저는 서울 토박이가 아닌데, 가끔 서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서울을 제외하고는 모두 "촌"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서울, 더 넓게는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지방이 모조리 "시골" 내지는 "촌"으로 취급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나라의 심각한 수도권 집중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은 덜 하지만 과거에는 웬만한 공연을 보려면 서울로 상경해야 했습니다. 모든 국제행사는 서울에서만 열렸고요. 서울은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경기도가 서울보다 인구가 더 많습니다. 그럼에도 경기도는 서울에 대해 종속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경기도의 많은 도시가 서울의 베드 타운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요.


서울 집중이 국가발전에 도움되나?


어떤 사람은 수도권에 사회의 거의 모든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는 현상은 우리나라의 경쟁력에 보탬이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게 된 것은 단연 좁은 면적에 적은 돈으로 광대역 인터넷망이나 무선통신망을 빨리 깔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우수한 인력이 서울에 집중되니까 기업의 입장에서도 우수한 인력을 쉽게 뽑고 활용하기도 쉽다는 것입니다. 또 서울에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어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은 조금만 움직여도 필요한 업무를 빨리 처리할 수 있다고요 하고요. 하지만 산업경쟁력이 더 높아진다는 것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서울의 교통체증은 심각하고, 물류 수송이나 사람이 오가는 데 비용이 많이 소모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좁은 곳에서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생활해야 하고, 치열한 경쟁은 삶의 여유를 앗아갑니다. 


삶의 여유가 중요


제가 세종시에 이사간 분들에게 여쭈어보면, 편의시설은 부족할지 몰라도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고 합니다. 끝없는 경쟁으로 내몰린 우리의 교육을 보면 당장 삶의 여유라는 것은 배부른 소리에 불과한 것으로 들립니다. 자녀에게 더 좋은 교육을 시키려는 부모는 힘들더라도 서울까지 출퇴근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주말부부가 되는 것도 불사합니다. 모든 것을 자녀의 교육을 위해 희생한다고 하지만 그 결과 자녀가 더 좋은 대학에 간다는 보장도 크지 않습니다. 더 좋은 대학을 나오더라도 더 좋은 직장을 갖기 어렵고, 자녀도 부모와 같이 더욱 어려운 경쟁에서 고달프게 살아갈 뿐입니다. 서울에 문화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는 것도 문제가 되지만, 문화라는 것은 삶의 여유를 위한 것이지 반드시 훌륭한 시설에서만 문화의 꽃이 피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몇몇 합리적인 기업은 서울보다 지방의 투자여건이 더 좋다고 판단해서 자발적으로 지방으로 옮겨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의도적인 정책은 여러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도 사실이고요. 사실 발전이라는 것은 중앙에서 먼저 이루어지고 점차 주변부로 확산되어 가는 것이 정상이고, 그냥 놔두더라도 지나친 집중에 따른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전체가 골고루 비슷해지는 균형발전이 저절로 달성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해소되기는 커녕 더욱 커져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방이 낙후되어 있다고 더 서울에 투자한다면, 지방은 더 낙후되지 않을까요?


수많은 현안 문제들의 해결책은?


우리의 국토가 인구에 비해 그리 넓지 않은데, 그 국토 중에서도 작은 일부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살고 있습니다. 최근 자살율이 높아지고, 저출산이 심각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삶의 질이 심각하게 추락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전국토가 균형적으로 발전한다고 해서 곧바로 삶의 질이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많은 동물실험에서 좁은 공간에 밀집된 개체가 서식하게 되면 동물은 서로에 대한 공격성이 크게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균형발전을 떠나 인구가 적절하게 분산된다면 서로에 대한 공격성만이라도 줄어들지 않을까요? 안전불감증에 따라 많은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러한 안전불감증은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이 부족해서고, 이것은 바로 인간이 인간에게서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다 보면 국토의 균형발전에 따라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점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혁신도시와 세종시 때문에 많은 공기업과 국가기관의 직원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그것이 KTX 대란으로 표출되었고요. 하지만 이러한 부작용은 차츰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점차 이주하는 사람은 늘어날 것이고, 사람이 증가함에 따라 교육 생활환경과 문화 인프라도 늘어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