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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한 성과 퇴폐적인 성, 누구 판단할까?

Posted by 약간의여유
2014. 10. 8. 13:38 이런저런

판단하지 않고 살 수 없다. 

우린 끝없이 판단을 내린다.

모두 자기 입장에서 판단한다.

성에 대해서는 더욱 자기 중심적이다.

과거 사회는 성을 두려운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성에 대한 아무런 판단도 내리지 못했다. 

사회는 성을 억제의 대상으로 보았다.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에 아이가 태어나면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풍요로운 시절에도 성은 그 본연의 역할로 대접을 받지 않았다. 단지 오락의 수단으로만 여겨졌다. 

사회는 성을 금기시했다. 성에 관한 터부가 유독 많디. 터부로 대하면 성을 접근하기 어렵다. 성에 대해 제대로 된 판단을 하게 된 것은 성을 터부로부터 해방해서 과학의 대상으로 삼으면서부터다. 

성을 과학으로 한다는 것 자체에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우리는 모두 사회의 세뇌교육에 따라 성관념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성을 논의의 장으로 이끌어내야 할 때이다. 과거에는 터부시되었던 성이 이제는 판단의 대상이 되었다.

매사의 판단은 일정한 기준에 따라 둘로 나누는 경우가 많다. 성도 그렇다. 

건전한 성과 퇴폐적인 성으로 분류할 수밖에 없다.  



어떠한 성이 건전한 것이고, 퇴폐적인 것인지에 대해서 누가 판단할 것인가? 

이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을 수 있다. 


1. 개인

2. 사회

3. 국가


1. 개인이 판단한다는 입장

개인주의적 입장에서는 개인이 모든 것의 판단주체가 되므로, 당연히 성에 대해서도 개인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이 성의 건전성을 판단한다고 하더라도 아직 성에 대해 주체적인 판단능력을 갖추지 못한 미성년자의 교육을 위해서는 누가 그 건전성을 판단해야 하는가? 

 가. 부모

 나. 교사

 부모와 교사 중에서 더 나은 정보와 지식을 가진 사람은 누구든지 교육을 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종적인 책임은 교사가 아니라 부모가 져야 하지 않을까? 성은 지식의 문제보다도 삶에 대한 책임성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니까. 



성인의 경우에는 전적으로 개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 부모도, 친구도, 선배도 후배도 책임질 수 없다. 다만 성인이 결혼한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 결혼에 따라 배우자에 대한 책임이 부가된다. 만약 배우자의 양해 하에 자기 마음대로 성적인 행동을 한다면 괜찮을 걸까? 하지만 배우자의 양해라는 것이 의심스럽다. 만약 배우자의 허락에 따라 배우자에 대한 의무를 저버릴 수 있다면, 사회적으로 배우자에게는 허락을 하도록 강조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 배우자에게 주어진 권리이지만 배우자가 상대방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때에는 사회적으로도 좋지 않은 영향이 미칠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성적인 결정을 오직 개인이 한다는 관점에서 어떤 한도 내에서는 사회가 개입할 수 있다는 관점이 제기된다.


2. 사회가 판단한다는 입장

성에 관한 것은 도덕이 개입한다. 도덕은 개인과 개인이 사회생활을 하는 가운데 필요한 행동준칙을 의미한다. 따라서 도덕의 성립은 완전히 개인에게 맡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라는 공동체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에 관해서 도덕주의적 견해이다. 

도덕은 사회의 구성원인 개인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데 봉사하는 것이어야 한다. 개인과 개인이 충돌할 때 이해관계를 적절하게 조절해서 가장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기준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은 아주 은밀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성과 관련된 타인이 존재하고 온전히 개인에게만 맡기기 어려운 사회적 영역이 존재한다. 

사회는 어느 정도까지 개인의 판단에 개입할 수 있을까? 사회라면 개인으로 구성된 것인데, 누가 사회를 대표할 것인가? 이러한 물음은 쉴새없이 제기된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최소한도로 개입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해치는 한도에서 사회의 판단이 개입되어야 한다. 사회는 어느 한 사람의 우두머리가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다른 사람의 행위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행위가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어떤 공통된 기준이 나오기 마련이다. 사회의 구성원 사이에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다 보면 점차 공감할 수 있는 기준이 생기는데, 이것을 도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과연 결혼 전에 성행위를 할 수 있느냐 하는 것도 이것에 관한 각자의 생각이 모여서 어떤 통념이 형성될 것이다.

간혹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성적 행위가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경우에는 그 행위를 금지하게 위해 강제력이 동원되어야 한다는 관점도 있을 수 있다. 이 때 성에 관한 사항을 국가가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 대두된다.  


3. 국가가 판단한다는 입장

국가가 판단하는 경우는 제한되고 있다. 최근에는 간통죄를 처벌하지 말자는 의견도 제기된다. 국가는 최소한의 경우에만 관여한다. 경우에 따라서 국가가 개입하는 영역이 넓어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성소년과의 성행위에 대해 국가의 처벌 강도가 더 쎄지고 있다. 성을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국가가 관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증가하고 있다. 시민은 도덕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생활상 안전을 위해 국가의 강화된 개입을 기대하는 것이다. 


성 도덕인가 성 정책인가?

그렇다면 건전한 성을 촉진하고, 퇴폐적인 성을 억제하기 위하여 국가가 정책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건전한 성이라는 것 자체가 개념정의하기가 어렵다. 시대별로 건전한 성의 개념이 바뀔 수 있다.



지금처럼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경우에는 국가의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 때에는 아이가 결혼으로 출산되든, 결혼 밖에서 출산되든 상관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실제로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 출산에 따른 장려금을 차별없이 지급하고 있다. 많은 청년들이 결혼에 따른 비용을 우려해서 자녀를 낳지 않는다면 일단 결혼을 장려하는 정책을 취하되 그래도 여의치 않으면 결혼 외에서라도 모쪼록 자녀를 많이 낳도록 하는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러한 국가의 정책 변화가 개인의 성적 자유를 침해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성적 윤리관념과 배치되는 행위를 국가가 장려한다고 분개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적으로 필요한 타인의 성적 행위를 모조리 "퇴폐적인 성"이라고 몰아붙이는 것도 점차 사회적으로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성에 대해서는 건전성보다는 효율성이 더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잡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