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헌 사건, 대중의 욕구와 두려움

Posted by 약간의여유
2014. 10. 7. 12:21 이런저런

옛 포스트에서 언론이 피해자인 이병헌을 비난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2014/09/30 - [이런저런 생각들] - 이병헌, 배우의 사생활 (피해자를 왜 비난하나)


그런데 언론이 이병헌이 처한 상황을 대서특필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불러모으는 것은 이 사건에 이미 대중이 관심을 가질만한 소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대중은 왜 이 사건에 관심을 갖고자 할까요? 저는 대중의 심리에 도사린 것이 본능적인 욕구와 두려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상에 수많은 사건이 일어나지만 대중의 관심을 끄는 것이 확실히 한정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못된 짓을 한 것은 바로 전파됩니다. 그 사람이 착한 일을 하더라도 별로 알려지지 않습니다. 만약 이병헌이 고아원에 1억원을 기탁했다고 합시다. 이 소식은 대중의 관심을 별로 끌지 않습니다. 간혹 이병헌이 좋은 일 했네 하면서 칭찬하는 사람도 있지만, 주로 팬들이나 그렇게 합니다. 안티는 이병헌이 위선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언급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일반대중은 이병헌의 선행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관심합니다. 


이번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이병헌이 어떤 불미스러운 일에 연결되었을 조그만 실마리만 있어도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듭니다. 이것은 누구라도 이병헌처럼  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사람은 겉으로는 이병헌을 욕합니다. 하지만 속 마음으로는 이병헌처럼 조금이라도 불미스러운 일에 관여하고 싶은 욕구도 있습니다. 대중은 이병헌이 못된 짓을 실제로 저질렀다면 그에 대한 비난에 더욱 열광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악에 대해 이야기하는 마음의 한켠에는 악의 보편성을 이야기하면서 그 악에 동참하고 싶어하는 것이 있습니다. 누구라도 쉽게 어떤 일을 저지를 수 있다면 나중에 자신이 그짓을 저지르더라도 자신에게 떨어지는 비난의 강도가 더 작아질 거라고 희망하면서요. 

또한 다른 면에서는 이병헌을 통해서 자기 주위 사람이 못된 짓을 저지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느낄 겁니다. 내 남편이나 내 아내가 나 몰래 부정한 짓을 저지르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요즘 들어 결혼관계는 그렇게 공고하지 않습니다. 한 편의 부정으로 깨지기 쉽습니다. 인간이 원래 불안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믿어 마지 않는 사랑도 완전하게 보존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우리는 자기 주위의 소중한 사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유명 연예인의 불미스러운 행동을 비난합니다. 이런 마음이 강할수록 잘못된 행동을 한 사람을 사회적으로 완전히 매장하려는 충동은 더 커집니다. 


이병헌 사건을 둘러싼 서로 모순되는 이러한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사건의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이병헌이 실제로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저버렸는지 여부는 충분히 따지지 않습니다. 언론도 이러한 대중의 욕구와 두려움에 편승해서 사건을 확대 재생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