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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과연 양심의 고통을 느꼈을까?

Posted by 약간의여유
2014. 9. 23. 15:32 알고배우며

확신범이 있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읽어보면 그가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확신에 차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사람은 그의 확신을 미치광이라고 표현한다. 

히틀러의 추종자에게는 그는 영웅이지만, 반대자에게 그는 악마였다. 

히틀러는 일시적으로 독일에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렸지만, 지금 히틀러를 추종하는 자는 미치광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히틀러는 문제적 인물이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것에 대해 의문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은 세상에 존재해야 할 사람과 없어져야 할 사람으로 나누었다. 아니 개개인에 대한 판단 전에 어떤 민족이 존속해야 하는지, 없어져야 하는지를 판단했다. 그는 철저한 진화론자였다. 독일민족이야말로 미래의 지구를 정복할 우수한 민족이므로, 나머지 민족은 조용히 사라졌야 한다고 믿었고, 유대인의 경우에는 빨리 없애도록 노력했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미치광이였지만, 이러한 신념에 따라 생활했고, 일상생활을 그런대로 영위를 했기 때문에 그의 동료들은 그가 어떻게 미쳤는지를 깨닫지 못했다. 오히려 그 미치광은 전파되었고, 독일을 뒤덮었다. 


이런 확신범에게도 양심은 남아 있었을까? 양심은 선한 마음이고, 인류에게 보편적인 도적적인 기준이다. 히틀러의 확신은 잘못 되었다. 그런데 그 확신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무슨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히틀러가 끝내 패배했기 때문에 그의 신념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히틀러의 사상은 인간의 본질적 양심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기준에 따라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일까? 


윤리기준의 상대성을 주장해서는 히틀러가 왜 잘못 되었는지를 판단하지 못할 것이다. 히틀러는 당시 인류가 가지고 있던 보편적인 도덕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사상을 갖고 있었다. 물론 서상인은 동양인을 험하게 다루었고, 아메리카에서는 미국이 원주민을 개돼지처럼 학살하였다. 하지만 이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인류는 깨달았다. 인류는 역사의 시행착오 과정을 통해 보편적인 기준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히틀러의 미치광을 통해서 인류는 인간의 보편적 기준과 양심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히틀러의 시험은 인간의 근본적인 존엄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고, 인류는 히틀러를 극복함으로써 그 해답을 찾게 되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존엄한 존재이고, 그 존엄의 본질적인 부분은 어떠한 경우에도 지켜져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히틀러가 항상 양심의 고통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자신의 승리에 도취되어 도덕적 감각이 무디어졌다. 그는 자신이 기존의 도덕관념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기준을 세울 수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그러다 자신의 실험과 시도가 실패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무언가 큰 두려움을 맛보게 되었을 것이다. 이 때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양심의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인간의 양심은 아주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사회적인 것"이다. 사회의 도덕적 기준은 단순히 관습으로 존속하기도 하지만, 인류 공동체는 부단한 실험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올바른 도덕적 기준을 수립하여 왔다. 누구든 사회적 징벌의 순간에서야 자신의 행위가 갖는 의미를 깨닫게 된다. 거대한 사회의 윤리에 대항해서 싸우려고 하는 사람은 그 마음 속 두근거림을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때가 올 것이다. 세상과 씨름하는 문제적 인간으로 하여 사회적 윤리가 향상된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악인에게서 얻는 유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