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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렁쇠 던지기 1

Posted by 약간의여유
2014. 8. 29. 14:41 이야기

벌써 퇴근 시간이다. 옅은 구름 사이로 기분좋은 햇볕이 아직 쏟아진다. 산들바람이 살갗을 감싸며 흘러간다. 얼굴을 간지럽히고 머릿결을 살짝 뒤로 흔드는 것으로 보아 남풍인 것 같다. 나는 빌딩 틈 사이로, 얕으막한 주택가 너머 산을 바라본다. 완만하고 포근한 능선을 이루는 봉우리가 엄마와 오누이처럼 다정하게 모여있다. 맨 앞에 보이는 누이 봉우리는 한껏 푸르름을 뽐내며 나한테 와보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아니 벌써 그 나무와 나무 사이에 꼬불꼬불 이어지는 좁은 숲길을 즐겁게 걷고 있는 내 모습이 상상의 눈 앞에 잠시 보였다가 사라진다. 저 숲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유쾌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나는 빌딩 사이에 시원스럽게 죽 뻗은 편도 6차로의 큰길을 걷는다. 빌딩도 인간이 만들어낸 숲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아기자기한 생명력이 넘친다. 간혹 생존경쟁의 살벌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나도 그 속에 끼어사는 일부가 아닌가? 거대한 원시림이 우거진 캘리포니아의 국립공원 속을 거닐면서 하늘높은 줄 모르고 우뚝 솟은 메타세콰이어를 바라보고 있다고 상상한다. 오늘처럼 상쾌한 날씨에는 더욱 그런 상상을 쉽게 할 수 있다. 즐거운 마음으로 지하철 역까지 걷다가 뛰어보기도 한다. 숨이 헉헉 차오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입구부터는 두 계단씩 내려간다. 지하통로에는 선반에 옷갖 상품을 펼쳐놓은 행상인들이 그곳을 지나가는 손님을 기대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나는 그 눈빛을 마주치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이 전철역에서는 지금 시간 대에는 평소 한 두 자리가 남아 앉을 수 있는데 오늘따라 사람이 많아 자리에 앉을 수 없다. 뭐 젊으니까 서서 책을 읽는 것도 좋다. 사실 앉아서 읽는 것보다 서서 읽는 것이 집중도 더 잘 되고, 어떤 연구조사에 의하면 선 자세가 건강에도 더 좋다고 하지 않던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뭐 자리가 있다면 굳이 서있으려고 하지는 않겠지만, 어차피 설 바에야 나에게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집에 도착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식탁에 앉아서 먹고 있다. 나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의자에 앉는다. 아내는 나에게 뭐라고 말을 한다. 나는 무슨 말인지 귀담아 듣지 않고 그저 밥을 떠 먹으면서 김치를 젓가락으로 집는다. 아내는 그제서야 가스레인지 쪽으로 가면서 "계란 후라이를 가져가 먹으라고 했는데, 못 들었어?" 


막 달걀을 먹으려는데, 아들 녀석이 자기 것을 다 먹고는 나한테 조금만 떼어달라고 한다. 나는 절반을 떼어준다. 나도 후딱 밥과 반찬을 해치운다. 물 대신 우유를 마시고 후식으로는 코스트코에서 사온 감자칩을 한 접시 덜어 먹는다. 아내는 그런 나를 보면서 저녁에 감자칩처럼 기름진 것을 먹으면 깊게 잠을 자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얘들이 잔 다음에 혼자서 먹으라고 한다. 나는 조금만 먹을 테니가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고 하면서 굳이 감자칩을 접시에 담았다.


잠시 일본어 공부를 한 다음 잠을 잔다. 식탁 굽어보고 있는 벽시계 쪽을 바라보니 11시쯤 됐다. 비교적 일찍 자는 축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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