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기 식용은 야만적? 문화적 편견과 타인에 대한 배려
우리 사회가 국제화됨에 따라 외국인이 우리에게 물어오는 것 중에 하나가 "과연 한국에서는 개고기를 식용으로 먹는가" 하는 것입니다. 참 난감한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외국인은 개고기를 음식으로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체를 경험적으로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한국이 개고기를 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 한국이 어떻게 해서 개고기 식용의 야만적인 문화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는지 매우 의문시할 것입니다.
유럽에서도 분명히 개고기를 즐겨 먹었던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서양의 역사학자들은 자신들의 개고기 식용의 역사에 대해서 자세히 연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의아스럽지요. 또한 서양 사람은 우리보다 더 많은 육류를 소비하고 있습니다. 소, 양, 염소, 닭 등 많은 육류를 소비하고 있으면서, 단지 개를 식용으로 먹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분노할 것은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위선적인 행태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문화적 상대주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에서 개고기를 먹는 것은 한국의 고유한 문화입니다. 물론 그 문화를 그대로 보존하고, 전승 발전시킬 것이냐 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요. 한국의 개고기 식용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서양인의 태도가 매우 야속하기만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어려서는 개고기를 먹지 않다가 사회에 나와서는 개고기를 그다지 꺼리지 않고 먹습니다. 즐겨 먹는 편은 아니지만 굳이 먹지 않겠다고 강하게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요즘 몇 년 동안은 개고기를 먹은 적이 없기는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개고기를 먹지 않은 것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저희 집에서 개를 키웠습니다. 저는 그 개를 무척 귀여워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느 날 밖에서 집으로 와 보니 개가 없는 것이었습니다.이것까지가 저의 기억입니다. 제 어머니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가 그 날 밤 개고기를 먹은 다음에 크게 배탈이 났단다. 그래서 너한테는 개고기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도 너한테만은 개고기를 주지 않았지."
저는 사회에 나와서 개고기를 먹고도 전혀 배탈이 난 적이 없었는데, 왜 제가 어렸을 때에는 개고기를 먹고 배탈이 났을까요. 지금 생각해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심리적인 요인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귀여워 하던 개가 어느 날 없어졌다는 것만 기억할 뿐 슬퍼한 기억이나 그 개를 먹은 기억 등은 아주 사라지고 없습니다.
과거에 여러 번 개고기의 식용을 정당화하고, 개 도축의 위생상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국회의원들이 법률안을 발의한 적이 있었습니다. 번번히 입법화되지 못하고 실패했습니다. 국회의원은 어차피 한국문화상 개고기를 식용하고 있으니까 위생상 깨끗하게 개를 도축함으로써 개고기의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럴 듯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쪽으로 생각하면 우리가 개고기를 먹지만 그것을 합법적으로 드러내 놓고 할 성질의 것이냐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결정할 문제이니까요.
개를 먹는 것은 결코 야만적인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고기를 먹는 것은 분명히 야만적일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를 먹는 것은 개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소나 닭이나 돼지를 먹는 것은요. 개가 소보다 더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대접을 받아야 하는 존재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극단적으로 생각해서 인간을 제외하고는 다른 동물은 평등하게 취급할 수 있고, 어느 동물을 먹든 야만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원숭이 고기를 먹는 것까지도. 원숭이 고기를 먹는 사람에 대해서는 저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혐오감을 느낄 것 같습니다. 원숭이가 인간과 상당히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성은 그 사람을 혐오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다르게 생각해 봅니다. 개를 애완용으로 기르고 애지중지하는 사람에게는 개고기를 먹는 것 자체가 매우 혐오스럽지 않을까요? 어떤 사람이 개를 아주 사랑스럽게 쓰다듬고 있는데, 지나 가던 사람이 "그 개 참 맛있게 생겼네." 하면 과연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요. 사회적인 문제는 완벽하게 이성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여러 사람의 감정을 적절하게 조절해서 다툼을 최소화하는 것이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아무래도 우리 사회에서는 소나 양, 돼지를 애완용으로 기르는 것보다는 개가 애완용으로 압도적으로 많을 것입니다. 과거 우리 사회에서는 개를 기르더라도 처음부터 아예 식용으로 기른 경우도 허다했을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개는 으레 애완용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점차 보편화되고 있는 듯 합니다.
저는 일산 주변에 거주하면서 주말마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시골 길을 가던 중 개 소리가 아주 요란하게 들리는 곳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눈을 들어 보니 개 사육용 우리를 3층으로 빽빽하게 쌓아 놓고, 한 우리마다 여러 마리를 집어 넣고 있었습니다. 개들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입니다. 과거에 닭들을 닭장 소에 빽빽하게 몰아 놓아 움직이지도 못하게 해서 기르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개의 경우에는 그렇게까지 빽빽하지는 않았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척 답답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자아냈습니다. 물론 그곳에 갇혀 있는 개들은 식용이었지요.
"101마리의 달마시안"이라는 만화연화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여기에서는 마치 마녀처럼 생긴 여성이 달마시안을 훔쳐서는 달마시안 가죽 외투를 만들어 입으려는 장면이 나옵니다. 물론 달마시안들은 모두 무사하게 탈출하는 것으로 영화가 끝 마치지요. 서양인은 개를 애완용으로 기르기 때문에, 가죽 생산용이나 식용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혐오하는 감정을 갖는 것 또한 매우 당연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문화적 상대성을 아무리 논해도 감정적으로 혐오스러운 것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사회도 많이 서양화되었고, 개를 애완용으로(요즘에는 "반려동물"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기르는 사람이 크게 늘었습니다. 사회는 민감한 사람을 보호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신체도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는 더 보호하려는 욕구가 있지요. 부끄러운 부분은 옷을 입어 가리고, 영광스러운 얼굴만은 드러내려고 하지요.
개를 애완용으로 기르는 사람과 식용으로 먹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민감한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개를 식용으로 먹는 사람은 다른 고기도 먹을 것입니다. 또한 개를 먹더라도 드러내지 않고도 조용하게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 개를 애완용으로 기르는 사람에게는, 개를 먹는 모습이 매우 혐오스러울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개를 애완용으로 기르는 사람이 사회의 더 민감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국제적으로도 개의 식용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추세로 보입니다. 서양이 주도하는 문화가 세계적으로 보편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서양의 문화적 편견이 다소 아니꼬운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개를 드러내 놓고 식용으로 하는 것은 아무래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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